북한-베트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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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20세기
2.2. 21세기
3. 경제 교류
4. 탈북 루트?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북한베트남의 관계. 베트남은 북한과는 일찍이 1950년 북베트남 시절에 수교를 했다.

냉전 시절에는 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북한이 지원을 보내 우호적이었지만, 대한민국의 경이적인 경제 성장에 따라 한월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북한-베트남 관계는 예전처럼 우방국 간의 관계라기보다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었다.

1992년 한월 수교 이후로는 문화적으로 남한 드라마와 영화, 노래가 베트남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문화적으로도 멀어져갔으니 당연히 우방국이라고 보기에는 뭐한 수준이 될 수 밖에 없기는 했다.

다만 베트남 입장에서는 남한에 대한 반감과 부정적인 감정은 여전히 있기 때문에 북한과 가까운 경우도 있다. 이유는 베트남 측이 남한을 인종차별을 이유로 비난하는 글이 상당히 많은 것도 이해가 가겠지만, 차이점은 베트남 쪽은 반중이고, 북한 쪽은 친중이라는 점이다.


2. 역사[편집]



2.1. 20세기[편집]


1957년에는 호찌민이 평양을 국빈방문하고, 1964년에는 김일성이 베트남 하노이를 국빈방문하여 베트남과 혈맹 관계를 세웠다.

'공산주의 동맹국'답게 한때는 절친한 우방국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군은 공군 전투조종사를 파병하고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에게 소총기관단총, 기관총, 탄환 등 무기들을 공급하기도 했다.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안학수 대한민국 육군 하사가 평양으로 이송되기까지 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한국군 포로는 없다. 그러나 실종 및 전사로 처리된 일부는 이런 식으로 북송당하기도 했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가 안학수 하사로, 북한에서 탈출을 기도하다 처형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렇듯 사이가 좋았으나 냉전시기 소련과 중공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북한은 베트남이 친중 정권이 있던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라며 비난했으며, 중월전쟁 당시 중국의 편을 들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격분한 베트남 정부는 형무소에 억류했던 이대용 공사 등 대한민국 외교관을 석방하고 남한으로 돌려보냈다. 석방 당시 깍듯하게 '따이한(대한)'이라는 정식 국호를 쓰며 푸짐하게 송별연까지 열어줬다고 한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고영환의 저서에 따르자면 애초에 사회주의권이란 이데올로기적 연결점을 통해 명목상이나마 같은 진영에 속해 있던 시절부터 실질적인 사이는 많이 안 좋았다 한다. 북한 측에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사회주의적 연대랍시고 공군 파일럿까지 파병했는데 북한 측에서 격추 시킨 미군기 좀 뜯어 보자고 요청하니 입을 싹 씻으면서 그때부터 김일성이가 못 믿을 월남놈들 운운하며 험악했다 한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중소결렬 이후에 베트남은 친소 노선을 따르고, 북한은 독자 노선으로 가면서 이후 중월전쟁의 계기가 된 베트남의 폴 포트 축출을 중국과 나란히 비난하면서 평양-하노이간 관계는 일찍이 70년대부터 허울만 좋았지 서로 연대 의식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북한이 미국이 베트남에 철군하면 한반도에 적화통일에 지장이 오니까 파리 평화협정 맺지 말고 계속 전쟁하라고 생떼를 쓰기도 했다.[1]

또한 북한의 진정한 절친이었던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북한이 캄보디아 편을 들었던 것도 있다. 베트남은 소련과 비슷한 계열인 코민테른의 동남아 공산당이 주축이 되었기 때문에 북한이나 캄보디아의 공산당과는 계열이 좀 다르다.

70년대까지는 북한도 경제난에 빠지기 이전이었다. 당시의 네임드 회고에, 공산주의 국가 간 우호 교역을 통해 동유럽산 포도주와 캐비아가 북한에 들어왔다던 시절이다. 그러니 관계가 깊을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베트남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선회한 반면 북한은 폐쇄정책을 고수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2.2. 21세기[편집]


2000년대 초반 북한에 경수로 지원을 위해 파견된 대한민국측 대표들이 북한측 대표들과 가진 회담에서 뜻밖에도 그들이 베트남에 대한 강렬한 반감과 적개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대한민국측 대표들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북한측 대표들은 "예전 베트남 전쟁 때 우리가 베트남에 군인들을 보내어 도와주었는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우리가 식량이 모자라서 고생을 하게 되자 베트남한테 연락을 해서 베트남은 쌀이 많이 나니까 쌀을 우리한테 보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베트남은 그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베트남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하고 싸가지없는 것들이다."라고 열변을 토하며 베트남을 비판했다고 전해진다.

2015년에는 박영식 인민무력상 북한 군사단과 함께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다.

투자와 교역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리고 베트남도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 국적자의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

베트남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대상에 오른 자국 주재 북한 외교관을 또다시 추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북한 국적자에 대한 비자 발급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조치에는 김정남 살해사건에 자국민이 이용당한 데 대한 강한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관련 기사

2018년 11월 중 북한 외무상 리용호가 베트남을 방문하며 도이머이와 베트남 개혁개방정책의 산물들을 둘러봤다고 한다. 그리고 베트남인 도안 티 흐엉과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 리홍의 아들 리지현이 김정남 암살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한 비공식적인 사과를 하였다고 베트남 정부 고위 당국자가 밝혔다.

2019년에는 팜빈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13일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등 북한의 외교라인 최고위급 인사를 접견했다.

이에 북한 베트남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로 베트남이 스스로를 추천한다고 보도되었다. 베트남 다낭 및 하노이가 후보지로 물망에 오른 가운데 미국이 한발 양보하며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를 북한 대사관이 있고 참매 1호 비행가능구역에 들어가있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다.

베트남이 2019년 북미정상회담을 유치하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베트남 전쟁 때 비공식적으로 파병해준 북한에 대한 보은을 하기 위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북한이 가난하기에 경제적으로는 큰 교류는 없지만 북한과의 외교관계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로 끝났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2]응우옌푸쫑 국가주석[3]이 정상회담을 하며 전통적 우호관계는 확인했다. 북미회담이 결렬되자 로동신문 등은 오히려 북-베 정상회담을 띄우기도 했다. #

2022년 3월 1일에 로동신문은 북한-베트남 정상회담 3주년을 기념해 북한과 베트남이 국제사회에서 보조를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2022년 9월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독립 축전을 보냈다.#


3. 경제 교류[편집]


북한은 총 120만 달러 규모의 자본으로 5개의 프로젝트를 베트남에 투자하였으며 이는 對베트남 투자 순위 중 81위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5개의 프로젝트 중 4개의 프로젝트가 요식업과 관련된 부분이며 나머지 하나는 홍삼제품과 건강식품 판매사업이다. 그러나 2014년 8월 베트남 보건부의 식품국(VFA)에 따르면 제품에서 납, 수은, 비소가 안전 기준치보다 높게 나와 해당 제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현재까지 기록된 베트남 해외투자 중 북한 투자는 없다. 북한의 경제전망 자체가 불투명하며 한국과의 관계, 대북제재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4. 탈북 루트?[편집]


중국, 북한과의 관계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베트남은 아직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베트남에서 체포된 북한이탈주민을 거의 무조건 북송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이들이 해외여행을 할 때 중국과 더불어 베트남항공, 뱀부항공, 비엣젯항공 등 베트남 국적 항공사나 이곳을 경유하는 루트도 기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대사관[편집]


북한은 하노이에, 베트남은 평양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1] 여담으로, 전투기 기술을 알아내기 위해 베트남으로 부터 기술을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베트남 전쟁 후 김일성이 노획된 미군 전투기를 보고 병력 지원해 줬으니 설계도를 달라고 하자. 적화통일 기회 노리겠답시고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를 반대했던 북한의 심보를 알고 있었고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비난을 해대는 통에 빈정이 상했던 베트남은 중국 편을 든 북한에 미군 전투기 설계도를 절대로 전수해 줄 리가 만무했다.[2] 조선로동당 위원장 겸직[3]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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